"<신문로 칼럼>우리 역사교육과 일본 왜곡 교과서(김경희)"
날짜 : 20010324


김경희/지식산업사 대표 한국전자출판협회 회장

일본 역사교과서 파동은 21세기 동북아시아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조짐이다.
그리하여 일본의 양식 있는 학자 지식인들마저 들고 일어나고 있으며 바다 건너 남과 북의 우리 겨레와 중국이 들썩거리고 있다. 왜냐하면 19세기 중말기 이후 지난 1세기 남짓,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가장 피해를 본 우리와 중국, 그리고 일본의 백성들은 아직도 그 끔찍한 역사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말할 것 없고 가해자의 편에 섰던 일본국민들도 그 여러 차례의 전쟁에서 죽었거나 부상당했고 마침내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에 패배함으로써 당한 고통의 원인이 바로 제국주의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의 우파들이 드러내 놓고 지원하는 일제의 침략을 미화하는 역사교과서가 일본 청소년들의 역사인식의 기준이 된다면, 일본인들의 비뚤어진 우월감과 주변 민족을 없수이 여긴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최근 문제의 왜곡 교과서 편찬자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한국과 중국의 학자들은 수준 미달이어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뜻을 버젓이 털어놓았다고 한다. 독일의 경우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 못지않은 주변 여러 나라와 민족들에게 피해를 입혔지만 독일 민족은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일본은 잘못을 사죄하기는커녕 독일과 반대로 오히려 그들의 침략과 만행을 미화하는 역사교육을 강행하고자 하는 것일까.

한국 등 ‘반개국’ 분류 후쿠자와의 침략논리
일본의 역사교과서 개악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1980년대 초에도 일본정부의 문부성에서 교과서 검정 때 그들의 잘못을 인정한 교과서 내용에 딴죽을 걸어 말썽이 났었다. 그 바로 뒤 ‘84년 일본 화폐 만엔(萬圓)권에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후쿠자와는 어떤 인물인가. 조금이라도 일본의 근대화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아마 이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유명한 일본의 명문대학 게이요 대학(慶應大學)의 창설자요, 일본 근대의 최고 계몽사상가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후쿠자는 ‘일본은 서양의 선진국을 따라 자본주의를 배워 힘을 기르되, 조선이나 중국은 서양 여러 나라 대신 일본이 지배해야 한다’는 이른바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을 들고나온 일본 제국주의 침략 이론의 주창자이다. 한때 후쿠자와는 우리의 근대화에 기여한 적이 있었다. 우리 최초의 근대적 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 발간을 뒤에서 주선했고, 개화당(開化黨)의 주역들인 김옥균(金玉均) 일파를 지원해 갑신정변(甲申政變)의 막후 연출자로 기능한다. 그러나 개화당 정권이 3일 만에 무너져 조선에서 친일 정권 수립이 물거품이 되자, 그는 태도를 돌변하여 갑신정변 100일 만에 예의 탈아입구론을 자신의 신문《지지신보(時事新報)》에 발표했다. 그는 철저한 동양문명 특히 유교 반대론자였고, 조선과 중국은 반쯤 야만인 반개국(半開國)으로 분류하여 일본의 침략과 지배의 논리를 정당화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웃에 대하여 그동안 어떻게 대응했으며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겨레야말로 일본제국주의의 제1피해자요, 그 후유증은 아직도 남북 분단으로 표현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우리를 옥죄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 수많은 족쇄와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뒤늦게나마 통일된 근대 민족국가를 머지 않아 이룩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교육은 어떠한가. 7차 교육과정 개편에서 ‘학습자 중심 교육’이란 논리를 앞세워 선택과목을 늘리면서 고교 1년은 국사를 필수로 하되 정치사 위주로 하고, 정작 제대로 가르쳐야 할 한국 근 현대사는 ‘2, 3학년에 선택으로 배정했다고 한다. 최근 일본 역사교과서 파동이 일어 국사교육 강화론이 제기되자, 교육당국은 ‘이미 내년도부터 쓸 새 교과서를 인쇄해 버렸으니 개편은 불가능하고 다만 2, 3학년 학생들이 근 현대사를 가급적 듣도록 일선 학교에 권장하겠다’고 말한다.

세계중심에 서려면 국사교육 푸대접 말아야
우리 근 현대사는 동북아 중심의 세계사이다. 우리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의 세계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오늘의 우리나라와 겨레의 문제가 ‘왜 이러한가를 알지 못하며, 따라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의 본질을 모르고서는 오늘의 해법이나 내일의 좌표를 제대로 설정할 수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오늘 우리 스스로를 제대로 가누려 한다면, 그리고 내일 우리가 동북아시아의 한 구성원으로 일본을 포함한 이웃들과 당당한 우호와 친선을 통해 유무상통하면서 세계 속의 한 중심으로 떳떳이 서려 한다면, 국사교육을 선택과목으로 푸대접하면 안된다.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의 아픈 과거와 그 고통을 뚫고 몸과 마음을 다바쳐 싸워왔던 우리 조상들의 찬란한 업적은 물론, 이웃들의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제대로 배우도록 가르치는 데 교육당국은 모든 장치를 시급히 갖추어야 할 것이다.

<내일신문> 2001년 5월 4일